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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와일드 그레이를 보고

moraeal 2021. 7. 21. 10:00

 

 

뮤지컬 와일드 그레이를 보고

에녹, 백동현, 안지환,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오블 6열

*스포주의*

 

 

 

 

 

 

1. 계기

 

서울 온 김에 가능한 한 많은 문화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레드북 공연 보기 전, 낮에도 공연 보기로 했다. 홍아센이 있는 대학로에서 낮 공연 찾았다. 솔직히 남성만 나와서 안 땡겼는데 이것만 시간이 됐다. 고민하다 시각 넓힌다 생각하고 예매했다.

 

 

 

2. 공연장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지하 2층으로 가야 한다.

 

 

 

 

3. 캐스팅

 

 

오스카 와일드, 에녹

알프레드 더글라스, 백동현

로버트 로스, 안지환

 

 

 

4. 공연 전

 

티켓 수령하고 놀랐다. 티켓 봉투와 티켓이 너무 예뻐서. 다른 공연들도 배웠으면 좋겠다. 제작사들아 인터파크 기본 디자인 버리고 극에 맞는 티켓으로 디자인해줘.... 해당 회차 주연 배우들의 포토 카드도 있었다. 이것도 회차마다 달라진다고 한다. 대학로 공연은 처음이라 우왕좌왕했지만 멤버십 적립도 했다. 와일드랑 보시로 도장을 찍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원래 한 회차 당 두 개를 찍어주나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더블 적립 데이여서 두 개를 찍어 준 것이었다. 티켓 디자인이나 포토 카드, 멤버십 적립까지 덕후들이 모으는 맛이 있겠다 싶었다.

평일 낮공인데도 자리가 꽉 찼다. 마티네는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러 오는구나.

 

 

 

5. 공연 후기

 

오프닝 대사가 인상 깊었다. 한 사내의 '안개가 짙으니 조심하라'는 말에 로버트는 '괜찮습니다. 해가 뜨면 사라질 테니까요.'라고 답한다. 그 말에 '현재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답답한 상황이지만 언젠가 해결이 될 것이다', '지금 동성애는 법적으로 죄이지만 언젠가는 죄가 되지 않는 날이 올 거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와일드 그레이에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발표해 영국을 뒤엎은 오스카 와일드와 그의 연인 알프레드 더글라스, 애칭 보시, 친구 로버트 로스 세 사람의 이야기다. 사랑 이야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오스카 와일드라는 작가와 그의 예술관을 조명하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가치관은 보수적인 현실과 괴리가 있다. 그는 현실과 타협하여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결말짓는다. 그러던 중 도리안의 환생 보시가 나타난다. 보시는 자신을 도리안, 오스카를 헨리에 비유한다. 도리안이 어떤 인물인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도리안과 헨리가 어떤 관계였는지 안다면 둘의 서사를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읽었다면 이야기가 다가오는 깊이가 다를 것 같다. 

그리스 비극이나 성경 이야기도 언급이 된다. 샬로메 이야기에 빗대 오스카와 보시를 설명하기도 하며 오이디푸스로 결말을 암시하기도 한다. 이런 부분을 알고 가면 더 재밌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몰라도 극에서 충분히 설명을 해주기 때문에 이해에는 큰 문제가 없다. 사족인데 샬로메 장면에서 신경전 장난 없다.

 

오스카와 로버트는 현실적이다. 보시는 어리고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겁쟁이다. 여기서 어리다는 철이 없다는 뜻이다. 보시는 오스카에게 현실을 버리고 사랑에 모든 걸 걸라고 요구하며 오스카가 자신을 구원해주길 바란다. 오스카는 그의 뜻대로 해주지만 정작 보시 자기는 그에게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현실 앞에서 그는 오스카와의 관계를 부정하며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고 오스카 탓만 하는 태도를 취한다. 귀족이라 현실을 모르는 놈인 줄 알았는데 그저 이기적인 놈이었다. 미성숙하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나이가 어린놈이었다. 심지어 오스카와 나이 차도 꽤 났다. 배우들 때문에 나이 차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나이 차를 한번 인지하고 나니까 그들의 관계가 새롭게 보였다.

+

서치 하다가 알았는데 배우들 간에도 나이 차가 꽤 있었다. 많아봤자 5~7살 차이인 줄 알았는데 15살 차이더라.

 

갈등이 고조되면서 보시의 불안정함도 정점을 찍는다. 그 위태위태함에 질려 '도장 로버트로 받을걸 그랬다.' 이런 생각을 하던 와중 오스카 와일드의 아내와 아이들의 얘기가 나왔다. 그동안의 몰입이 한순간에 와장창 하고 깨졌다. 무언가 팍 식는 느낌이었다. 보수적인 시대가 불러온 비극적인 사랑과 인물들의 예술관, 자유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야기의 주인공이 결혼한 남성 동성애자였다. 졸지에 불륜 얘기 본 사람 돼버렸다. 지금과 달리 그 시대는 결혼이 필수였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외도는 외도 아닌가.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나 동성연애나 사회의 시선이 안 좋기는 매한가진데, 남자와 연애는 했으면서 여자와 결혼을 하지 않거나 이혼을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것 자체가... 여자를 뭘로 보는 건지... 실화를 찾아보지 않고 공연을 보러 온 나의 잘못인가 하... 나이 차이는 애써 흐린 눈 했는데 이건 도저히 흐린 눈이 안됐다. 이후부터는 아내와 아이들 생각에 집중이 하나도 안됐다.

 

스토리와 별개로 에녹, 안지환 배우의 연기는 기억에 남는다. 다정한 오스카와 오스카의 친구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알지만 미련이 있는 로버트로 연기했는데 합이 좋았다. 보시 배우는 몸 쓰는 게 좀 어색했다.

오스카가 술 쏟고 하 이런 표정으로 손 터는 것과 보시 뒷 주머니에 있는 총이 이번 회차에서 시강이었다.

 

 

앞으로 실화를 꼼꼼히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