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로 가득 찬 연말, 뮤지컬 시카고를 보고
재즈로 가득 찬 연말
뮤지컬 시카고를 보고
1. 계기
대구 공연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예매를 망설였다. 영화를 봐서 스토리를 알고 있었기에 서사를 예측하는 재미도 없을 것 같았고, 무대 영상도 외울만큼 봐서 현장에서 본다고 뭐가 다를까 싶었다. 티켓 할인도 없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캐스트가 안 끌렸다. 벨마는 누구든지 괜찮았지만 록시는 민경아로, 빌리는 최재림으로 보고 싶었다. 맞다. We Both Reached For The Gun 프레스콜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방 공연이라 그런지 캐스트가 다양하지 못했고 그 페어는 볼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볼까 말까 고민했지만 일행이 보고 싶어해서 예매를 하기로 했다. 좋아하는 배우가 없는 나는 극에서 영향이 더 큰 록시에 중점을 두고 회차를 선택했다.
위의 영상이 내가 민경아 록시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 공연장
대구오페라하우스
3. 캐스팅
최정원, 민경아, 박건형, 김경선
4. 공연 전
지방 공연이라 느긋하게 공연 시작 30분 전에 갔다. 티켓 수령하고 포토존에서 사진 찍으니까 딱 공연 시간이 되었다. 오페라하우스지만 오페라 글라스 대여 서비스는 보이지 않았다. 오페라 글라스가 있는 사람을 챙겨가시길.
백신 패스 시행 이후여서 공연장 입구에서 어셔들이 백신 패스를 확인했다. 백신 패스가 인증이 되지 않으면 로비조차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대구오페라하우스 바로 앞 삼성 창조 캠퍼스 내에 음식점이 매우 많이 때문에 식사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아니면 버스로 10분 거리에 동성로가 있으니 거기서 밥을 먹어도 되고.
5. 공연 후기
기대치 제로인 상태로 갔는데, 뭐야 너무 재밌어. 내가 같은 걸 여러 번 보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스토리를 다 알고 있어서 극을 이해하기가 쉬웠고 넘버도 익숙해서 즐기는 맛이 있었다. 무대 영상도 많이 봤던터라 디테일한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연말과 재즈 베이스의 음악도 잘 어울렸고.
스토리보다는 배우들이 인상 깊었다. 우선 최정원. 최정원 연륜에 뒤집어짐... 다른 배우들이 대리 정도라면 혼자 본부장이었다. 오프닝을 All That Jazz로 시작하는데 그 때부터 감탄하면서 봤다. 현장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여태껏 본 All That Jazz 중에서 제일 좋았다. 시카고의 유머 담당이기도 했다. 극의 유머 포인트는 다 최정원에게서 나왔다. 아니 시카고가 이렇게 웃긴 극이었나. 벨마가 록시에게 같이 공연을 하자고 제안하면서 동생과 했던 쇼를 보여주는데 '둘이 한다고 상상해'라고 하는데 정말 웃겼다. 짬바가 있으니까 극의 유머 포인트를 잘 살리는 듯하다. 지방 공연이라고 지방 맞춤형 대사도 해줬다. 일부 대사를 '운도 지지리도 없네예~'와 '막창 사주이소'로 바꿔서 했는데 어색했지만 지방 공연을 신경 쓴다는 느낌을 받아서 좋았다. 춤도 힘 안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작이 정확했다. 전체적으로 연륜에서 흐르는 여유로움이 보였다.
민경아는 록시를 유명세에 미쳐있는 푼수로 표현했다. 왜 조용하다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면 한 가지에 돌아서 나사 빠져 있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었다. 유명세와 관련됐다면 주체를 못하는 그 해석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 방정 맞기도 하다. 꽤나 디테일하게 연기를 해서 놀랐다. 우선 Roxie 하기 전 독백. 신문에 대서특필 된 자기를 보면서 정말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유명세를 얻게 될 거란 설레임에 흥분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연기가 인상 깊었다. 감정의 변화 때문인지 꽤 긴 독백이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딴 말이지만 Roxie에서 '행복하세요. 록시' 할 때 별 모양 싸인을 이 때는 안 해줘서 아쉬웠다. 나름 별 싸인이 포인트라 기대했는데. 또 We Both Reached For The Gun에서 빌리가 잡아준 자세를 오래 유지하다가 풀 때 팔 아픈 표정을 지은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순간적이었지만 그런 표정을 함으로써 캐릭터가 살아 있는 듯했다. 그리고 메리 선샤인이 자기에 대한 기사를 쓸 때도 눈 깜빡이며 초롱초롱하게 보는 연기를 하는데, 여기서도 정말 세세하게 연기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메리 선샤인은 왜 남자 배우가 하는지...? 메리 선샤인이 시카고 원작자가 자기를 투영한 캐릭터이다. 원작자는 여자인데 왜 갑자기 남자 배우가 그 역을 맡는지 모르겠다.
박건형은 생각보다 좋았다. We Both Reached For The Gun에서 복화술이 완전 감쪽 같지는 않지만 생각보다는 입과 주변 근육이 움직이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잘 모를 것 같다.
영화 연출과 비교해서 보는 맛도 있었다. 셀 블럭 탱고나, 헝가리 무용수가 교수형 당하는 장면이 제일 비교가 됐다. 셀 블럭 탱고에서 죄수들이 자신이 교도소에 갇힌 이유를 말 할 때 영화에서는 회상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시간적, 공간적 제한이 있는 뮤지컬에서는 대사로 설명하는 것이 전부였다. 헝가리 무용수가 교수형 당하는 장면을 뮤지컬은 은유적으로 연출했다. 무대 끝에서 사다리를 이용한 연출도 기억에 남는데, 다른 배우가 흔들리지 않게 잡고는 있지만 배우들 저러다 다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영화는 진지하게 이어지는데 뮤지컬은 중간중간에 유머도 있다는 점도 달랐다.
무대 위에는 밴드 좌석(?) 겸 배우들이 등장하는 통로로 쓰는 장치만 있을 뿐 특별한 무대 장치는 없다. 미니멀한 무대이지만 허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기대 안 하고 갔는데 극 자체는 생각보다 유쾌하고 재밌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선 남자 앙상블의 의상. 관능적인 극 분위기에 맞게 남자 앙상블 옷이 더 과감해졌으면 좋겠다. 제모도 좀 하고. 정말 중간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근데 시스루 상의 입고 판사 역할하니까 경박스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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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리뷰는 여기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