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는 멀다. 속초 여행을 다녀와서
속초는 멀다.
속초 여행을 다녀와서
문득 겨울바다와 눈이 보고 싶었다. 생각난 도시가 속초였다. 몇 달을 고민하다가 결국은 떠났다.
첫날
날씨 미세먼지 많음
일정: 대구 출발 > 속초 도착 > 숙초 체크인 > 속초 항아리 물회 > 속초 해수욕장 > 숙소에서 간단히 술 마시기
준비하면서도 참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지방 교통 인프라의 열악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달까. 먼저 기차를 찾아봤는데 동대구에서 속초로 가는 직통 차가 없어서 서울에서 환승해야 했다. 버스는 시외버스밖에 없었다. 비용과 시간 면에서 모두 버스가 효율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해서 시외버스를 예매했다. 비행기는 버스를 타니까 생각이 났다.
시외버스는 동대구에서 오전 8시 30분에 출발하는 차였다. 버스 탈 때 속초에 4시에 도착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분명 예매할 때는 4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했는데 갑자기 3시간이 추가되었다. 그 얘기 듣자마자 멀미가 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버스 앞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포항, 영덕, 울진, 삼척, 동해, 강릉. 이 도시를 다 찍고 속초에 가는 거였다. 이때 처음으로 한국에서도 차 타고 7시간 반 걸리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처음으로 버스에도 경유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동안 고속버스만 타서 몰랐던 것... 작은 터미널까지 합하면 버스터미널 한 10개는 찍었을 거다.
출발하자마자 냅다 누워서 자기는 했는데 걸리는 시간이 시간인지라... 나중에는 잠도 안 왔다. 공복에 허기와 멀미가 합쳐져 속이 정말 안 좋았다. 숙취도 이런 숙취는 느껴보지 못했다. 이쯤 되니 중간에 아무 도시에서나 내리고 싶었다. 장거리 비행기를 타면 이런 기분일까. 해외여행 가는 기분을 국내에서 느끼다니.
해외 가고 싶다. 친구가 보낸 카톡. 가슴이 아프고 안타깝다. 그리고 한참 생각했다. 난 참 행복한 놈이구나... 아무리 힘들어도 난 7시간 반 동안 이동하고 있으니까. 화이팅!
하...
돌아올 때도 버스를 타야 하는데 도저히 버틸 자신이 없어 비행기를 알아봤다. 불행히도 양양에서 대구까지 가는 국내선은 일정과 우리 일정이 맞지 않았다. 눈물이 났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다가 4시에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렸다. 원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야 하는데 거기도 잠깐 정차하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숙소를 속초 해변 근처로 잡았기 때문에 속초 해변 근처인 속초 고터에 내렸다. 내릴 때 다리 풀려서 주저앉을 뻔했다.
속초 고속터미널에서 속초 해수욕장까지 걸어서 5분도 채 안 걸렸다. 우선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아침, 점심 두 끼를 못 먹었더니 배가 너무 고팠다. 몸도 고되어서 첫날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근처에서 해산물 먹고 해변가를 걷기로 했다. 찾아보니 근처에 항아리물회가 유명하다고 해서 갔다. 저녁 시간 전인데도 사람이 많았다. 우리는 물회랑 섭국을 시켰다. 물회는 밥 대신 소면이 나왔다. 멍게에서 멍게 특유의 향이 나지 않아서 신기했다. 섭국은 처음 먹어봤는데 콩나물 때문인지 국물이 많은 해물찜 같았다.
밥 먹고 산책 겸 해변을 걸었다. 이 날 바다가 예뻤다. 바다 사진을 찍는 데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파도가 오는 줄도 몰랐다. 축축하다고 느낄 때는 이미 늦었다. 눈 깜빡할 새에 신발이 젖었다. 바다 바람이 차서 산책도 그만두고 숙소로 와서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쉬었다.
이건 조금 다른 애긴데 속초에서는 해안가 특유의 짠내가 안 났다. 부산이나 다른 해안 도시 가면 기차만 내려도 바다 짠내가 확 끼치는데 속초는 해변가였음에도 그런 냄새가 없어서 신기했다.
두 번째 날
날씨 흐리고 비
일정: 속초 해수욕장 > 금이야 옥이야 > 설악산 > 소야 삼교리 동치미 막국수 > 낙산사 > 속초 중앙시장 > 중앙 닭강정과 아바이 순대 포장
두 끼를 굶은 여파였을까. 평소에는 아침을 먹지도 않는데 웬일로 아침부터 배가 고팠다. 근처 금이야 옥이야가 문을 열어서 그곳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그때가 9시 조금 안된 시각이었는데 웨이팅이 있었다. 우리는 장칼국수 하나, 감자전 하나를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감자전이 엄청 바삭했는데 간장 없이 먹어도 맛있었고 장칼국수는 칼칼하니 한국인 맞춤이었다. 해장하고 먹어도 참 좋을 듯했다. 칼국수 국물과 풀어넣은 달걀물이 꽤 어울렸다. 아침을 정말 든든하게 먹고 설악산으로 출발했다.
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 정류장에서 7번을 타고 도착한 설악 마운틴. 7번, 7-1번 버스는 1시간에 2~3대 꼴로 운행했다. 1시간에 1대나 2시간에 1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버스 배차 간격이 좁았다.
7번, 7-1번 버스를 타고 도착한 설악산국립공원은 신흥사 부지로, 들어가려면 문화재 보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입장료는 성인 1명 당 4,500원이었다.
입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바로 케이블 카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들어가서 케이블 카 탑승권을 구매하고 절을 한 바퀴 둘러보기를 추천한다. 우리는 신흥사를 구경하고 케이블 카를 타러 갔는데 바로 다음과 다다음 차가 예매 완료였다. 그래서 다다다음 차를 예매했고 약 30분을 기다려야 했다. 탑승권이 빨리 품절되니 원하는 시간의 탑승권을 미리 끊어두고 기다리는 동안 구경 가는 게 나을 것이다.
케이블 카는 1인 당 왕복 13,000원이었다.
신흥사 가는 길. 오래된 사찰이라 그런지 길을 따라 빼곡히 돌탑이 세워져 있었다. 담장의 돌 위에도 돌탑이 쌓아져 있었다. 저마다 염원하는 마음으로 쌓았겠지.
설악산 권금성. 케이블 카에서 내려서 조금 걸어야 했다. 걷기가 끝나고 고개를 들자 얼마 동안은 감탄만 나왔다. 경이로웠다. 날씨가 흐려서 아쉬웠다. 날이 맑으면 동해까지 탁 트였을 텐데. 흐린 날씨임에도 정말 장관이었다. 눈이 소복이 쌓이면 더 멋지겠지.
울산바위는 권금성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케이블 카에서는 볼 수 있었다. 정말 멋졌는데 금방 안개에 가려졌다.
설악산은 제주도 한라산과는 또 달랐다. 한라산 영실코스는 나무 데크가 깔린 계단이었다면 설악산은 데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돌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짧은 거리지만 등산화나 산악화를 신지 않았더니 무릎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여기서 넘어지면 이 나가겠다는 생각이 들어 입술을 꾹 다물었다.
설악산에서 내려와서 점심으로 소야 삼교리 동치미 막국수를 먹으러 갔다. 물막, 비막이 따로 있지 않고 동치미와 양념장, 식초 등을 손님이 원하는 대로 넣어서 먹는 방식이었다. 면을 커스터마이징 해서 먹기는 처음이었다. 양도 푸짐했고 메밀만두도 따끈하고 속이 꽉 차있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낙산사로 향했다. 9번, 9-1번을 타면 되는데 목적지에 따라 요금이 달랐다. 버스 기사님께 목적지를 말하면 알아서 요금 바꿔주신다.
낙산사인데 절 사진은 없고 죄다 바다 사진이다. 그만큼 경치가 멋지다는 거지...
낙산사는 생각보다 큰 규모의 절이었다. 의상대사는 앞을 보면 바다가 있고 뒤돌면 설악산이 버티고 있는 이곳에, 어떻게 이런 규모의 절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여기에 건물을 짓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런 뷰를 볼 수 있는 곳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이런 경치를 가진 곳에 카페를 지으려나. 뷰 맛집으로 소문났을 거다.
낙산사의 특이한 점은 청색 기와를 쓴 건물이 있었다는 것이다. 보통 사찰은 흑색 기와에 녹색과 갈색이 눈에 띠는 단청이었는데 낙산사에는 청색 기와가 있어서 신기했다.
절이 가진 특성 때문인가 비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데 마음만은 평온했다.
한 바퀴 돌고 의상대에서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일몰 시간이 다가와도 해가 지지 않았다. 당연하다. 여기는 동해였고 해는 서쪽에서 졌다. 일몰을 볼 수 없는 구조였다. 바본가...
낙산사에서 내려와서 속초 중앙시장에 갔다. 우리가 시장에 갔을 때 만석 닭강정 2호점은 불이 꺼져 있었다. 못 먹나 보다 하고 아쉬워했는데 사람들은 죄다 닭강정 박스를 들고 다녔다. 이전에 샀던 사람들이 계속 시장을 구경하는 상황이 아니라 분명 새로 구매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파는 곳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따라 시장 안으로 가니까 중앙닭강정, 만석닭강정 등등 닭강정 파는 가게들이 있었다. 우리는 중앙닭강정에서 보통맛 뼈를 주문했는데 귀찮아하는 티를 너무 내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시장 내 가게에서 아바이 순대도 포장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전날 먹다 남은 맥주랑 같이 저녁 겸 야식으로 먹었다. 아바이 순대 살 때 명태 회무침도 같이 주셨는데 생각보다 둘이 잘 어울렸다.
닭강정은 그저 그랬다. 치킨집에서 닭강정시키면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허업-미쳤다'까지는 전혀 아니지만 한 번쯤 먹어볼 만하다. 우리는 남겨두고 그다음 날 아침으로 먹었는데 어째 금방 했을 때보다 하루 뒤에 먹었을 때가 더 맛있었다. 그 사이 양념이 속에 배였나 보다.
세 번째 날
날씨 흐리고 비
일정: 속초 해숙 욕장 > 카페 >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 동대구 > 집
전날 빡센 일정이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마지막으로 해수욕장 산책을 하기로 했다. 전날, 전전날과 다르게 파도가 아주 사납게 쳤다. 그래서 한참을 멀찍이 떨어져서 바다를 봤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가 떨어져서 카페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해수욕장 바로 앞에 있던 카페였는데 널찍하고 조용했다. 그 후 체크아웃을 하고 지옥 버스를 타러 시외버스터미널로 갔다.
저녁부터 밤새 비가 왔는데 고지대는 기온이 낮아서 눈으로 내렸나 보다. 설악산이 하얗게 뒤덮여 있었다. 택시 안에서 설악산을 보는데 왜 '설'악산인지 알겠다. 전에도 멋졌지만 눈 내리니까 차원이 달랐다. 슈퍼 울트라 화이트 마운틴이었다. 눈 내린 산이 구름을 끼고 있는 모양새가 아주 절경이었다. 우리가 날을 잘못 골랐다.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이렇게 사흘 동안의 속초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짧디 짧았다. 무리해서라도 일주일은 있어야 했다. 속초가 주는 평온한 분위기가 생각 이상으로 좋아서 여유가 된다면 나중에 한 달 살기로 오고 싶다. 한달 살면서 근처 강릉이나 동해도 들러야지.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