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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메리셸리 중계 후기

moraeal 2022. 11. 30. 10:00

 

 

뮤지컬 메리 셸리 중계 후기

 

 

최연우, 송원근, 기세중, 안창용, 정가희

 

 

 

자첫 때 거하게 튕겼다. 기억나는 게 어두운 분위기, 메리 역 배우밖에 없을 정도로 흐릿했다. 그럼에도 유료 중계를 본 이유는 그 후에 메리의 책 <프랑켄슈타인>을 정말 흥미롭게 읽었고, 발매된 오에스티가 기억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계를 다시 보기로 했다.

 

중계 보고 느낀점 :  메리 셸리 재연 와야만.

내 기억보다 훨씬 괜찮았다. 심지어 재연 오면 회전 돌고 싶을 정도로.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봐서 더 재밌게 본 것 같다.

넘버 정말 좋다. 특히 '신이 인간을' 넘버에서 바이올린과 일렉 기타 소리가 정말 죽인다.

 

 

가장 다르게 다가온 캐릭터는 바이런과 폴리였다.

자첫 때는 바이런 역을 정휘, 중계에서는 안창용 배우가 맡았다. 정휘는 어림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었다. 정휘 바이런이 위태롭고 외롭고 예민한 느낌이라면 창용 바이런은 그냥 그렇게 나이 든 놈 같았다. 말이 좀 이상한데... 늙어서 성깔만 남은 느낌이었다. 더 위험한 사람 같았다. 정휘 바이런은 사랑과 관심을 주면 콧방귀 뀌지만서도 언젠가는 나아질 것 같은데 창용 바이런은 고쳐 쓰지도 못할 것 같달까. 창용 바이런이 찐 중독자라면 정휘는 애송이...? 전체적으로 창용 바이런이 더 납득이 됐는데 '인생은 공포소설처럼' 넘버는 정휘가 정말 간드러지게 부른다는 생각을 했다.

런폴리는 묵직했다. 덩치도 문짝만 하고 목소리도 낮아서 바이런이 하나도 안 두려워 보였다. 런폴리는 '드러워서 해주고 만다', '이 바닥 언젠간 뜬다' 이런 느낌이라면 자첫 때 봤던 폴리는 바이런의 집착이 지긋지긋하지만 두려워하는 마음이 더 잘 느껴졌다.

그리고 바이런과 폴리의 관계도 조금 달랐다. 정휘 바이런은 폴리와 섹슈얼한 느낌이 있어서 둘이 붙으면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 어머?' 이러면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런창용은 그런 느낌은 훨씬 덜 했다. 

 

퍼시는 다시 봐도 쓰레기다. 지가 수작 부려서 꼬셔 놓고 메리를 그렇게 대해? 이기적인 놈. 저자 가로챌 때 진짜.....

메리는 최연우 배우로만 봐서 캐해 비교가 힘들다. 여누 메리만 말하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위태로운 곳이 하나도 없었고 다른 배우들과 목소리 합이 정말 좋았다. 메리의 괴로운 감정이 잘 느껴졌다. 현재에서 과거로 바뀌는 장면에서 감정이 순식간에 변하는 모습도 놀라웠다. 예민하고 괴로워하던 메리에서 사랑에 빠진 메리로 어떻게 그렇게 빨리 바뀌는지. 

 

 

<메리 셸리>는 문학 작품 인용이 엄청 많다. 우선 당연히 <프랑켄슈타인> 구절 인용이 있고, '사랑할 자유' 가사도 바이런의 시를 인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폴리도리의 <뱀파이어>, 바이런의 시를 조금 읽고 보면 더 보이는 게 많을 것 같다. 

나도 자첫 때는 물음표가 떴던 부분이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보니까 이해됐다. 우선 괴물과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관계부터 알아야 전반적인 극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피조물이다. 어느 피조물이 그렇듯, 괴물도 자기가 원해서 탄생되지 않았다. 온전히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의지로 탄생되었건만 자기의 창조주는 자신을 두려워하고 부정한다. 공포감을 주는 외모 때문에 사람들에게도 배척당해 괴물은 언제나 고독 속에 있다. 고통스러운 외로움을 알려준 자신의 창조주를 원망한다.

이 괴물과 프랑켄슈타인의 관계가 뮤지컬에서는 작품 <프랑켄슈타인>과 작가 메리의 관계, 인간 메리와 신의 관계처럼 보여서 흥미로웠다. 괴물이 '북극에서 만나'에서 '외면하지 말라'라고 할 때 마치 메리의 글이 메리 보고 하는 말 같았다. 메리는 자기 글을 '여자가 쓴 글을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요'하며 부정하기 때문이다. 괴물이 '왜 나를 만드셨나이까'라고 할 때는 괴물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운명을 때문에 창조주를 원망하는 메리와 겹쳐 보였다. 보면 볼수록 메리는 자기의 삶을 <프랑켄슈타인>에 온전히 녹여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종종 호수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니까 주변이 온통 평화로운데 오직 나만이 그처럼 아름답고 신성한 풍경 속에서 흥분한 채 방황하는 불안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물이 나와 나의 불행을 영원히 삼켜버릴 것만 같은 조용한 호수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프랑켄슈타인에서 발췌한 구절인데 메리가 이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하면 그저 눈물이 나는 거예요....

하지만 메리는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른 길을 간다. 메리는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겠어. 그 괴물은 나니까', '네 제가 이 소설을 쓴 괴물입니다'라며 괴물, 즉 내 안의 두려움을 똑바로 바라보고 두려움을 인정한다. 비로소 <프랑켄슈타인>이 자기 글임을 밝힌다.

이런 변화의 계기는 엄마 메리 울스턴래프트의 책. 자신과 같은 이름인 것도 싫어하는데 엄마의 책을 읽고 두려움을 똑바로 보게 된다는 게 진짜 나를 미치게 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 너머에는 자유가 있다'는 말이 이제 이해가 간다.

괴물은 초록 조명을 쓰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폴리도리 역 배우가 괴물도 맡는데 괴물일 때는 초록 조명을 쓴다. 미디어에서 흔히 괴물이 머리에 나사를 꽂고 초록색 피부라고 묘사되는 점을 이용한 연출이다.

소설 프랑켄슈타인 다시 읽고 메리셸리 다시 보고 싶다. 아니면 메리셸리 대본집 사서 뜯어먹고 싶다.

 

 

+

난 항상 메리 같은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위키드의 엘파바, 레드북의 안나, 리지의 리지, 메리셸리의 메리. 거대한 사회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부딪히는 여자들. 여러 갈등에도 꿋꿋이 자기의 삶을 살아내는 여자들. 해방과 자유를 갈망하는 여자들. 성장하는 여자들. 어떻게 안 아낄 수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