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드북 공연 실황 영화관 상영 후기
뮤지컬 레드북
공연 실황 영화관 상영 후기
김세정, 인성, 홍우진, 방진의, 원종환, 안창용, 허순미, 김연진, 이다정, 박세훈, 김지훈, 강동우, 김혜미
스포일러 주의
레드북 재연 실황이 영화관에서 개봉해서 근처 CGV에 보러 갔다. 21년 재연 영상이었고 당시 몇 차례 중계도 되었던 영상이다. 이미 한 차례 봤던 영상이지만 어떻게 덕후가 한번으로 그치나. 삼연 오기 전 예습 차원으로 보러 갔다.
웃기고 가벼운데 무겁고 통쾌한데 짜증도 나고 공감가는 극.
일단 웃포가 많다. 신사 친구들의 착착하는 인사법도 웃기고 초반에 안나에게 도움을 주는 브라운에게 '환자야 환자 선행 중독자' 이것도 웃기다. 신사 친구들이 정말 감초다. 사마귀 씬도 웃기고 나나말 후 법정에서 이름이랑 주소가 다 샐러드 재료와 드레싱 이름인 점도 위트 있었다. 극혐인 캐릭터들도 하찮게, 정말 악역임이 보이게 그려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안나의 행동이 통쾌해서 나는 웃음도 있다.
마냥 깔깔극은 아니다. 레드북은 보수적인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안나는 여성 문학회 '로렐라이 언덕'에 들어가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소설을 쓴다. 여성의 신체와 성을 언급하지 못했던 시대에 이 소설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데... 우리 진취적이고 자유롭고 솔직하고 당찬 안나가 이 갈등으로 인해 고민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안날 수가 없는 거예요...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세정 안나 정말 정말 정말 찰떡이다. 이미지가 잘 맞아서 기대했는데 그 이상으로 잘 한다. 노래 잘하는 거야 너무 유명하고 연기가 엄청 좋다. 웃고 있다가 바이올렛의 목소리가 들릴 때 잠깐 멈칫하는 모습 등등 자연스러워서 극에 더 몰입하게 한다. '우리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 에서 여인들을 향해 정말 즐거운 듯이 싱긋 웃을 때나, '야한 여자'에서 나쁜 여자가 되겠다고 하는 모습이나, '나는 나는 말하는 사람'에서 결국 자기 안의 의심을 멈추고 자기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도. 감정의 폭이 넓고 깊은데 그걸 표현할 줄 알았다. 연기도 되고 노래도 되고 안무도 되는 뮤지컬 인재인데 삼연에 못와서 나도 슬프고 당사자도 슬프고 세상도 슬프고... 다음엔 꼬옥 와주면 되.....
세정이 너무 잘해서 브라운은 아쉬웠다. 난 다른 브라운을 봤으니 더더욱 감정이 부족하고 딱딱한 느낌이 들었다. 브라운은 신사다움에 집착하지만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는 이 시대의 순수**남이다. 좀 뚝딱거릴 때 브라운이 연애 한번도 못 해 본 쑥맥임을 상기하면서 봤다.
레드북은 모든 서사가 안나에게 집중돼서 좋다. 이제 남성 서사, 남성의 자아 성찰과 성장, 여성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질렸다. 여자도 자기를 대변해 줄 여성 주인공이 필요하거든. 레드북에서는 안나는 자아를 찾고 성장하는데 브라운이 사랑 타령한다. 끝끝내 주인공이 안나로 유지되는 점이 좋았다.
이번에 영화관에서 보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있는데 바로 바로 바로 신사 친구들의 고모부가 딕 존슨이었다. 전혀 몰랐다. 끔찍해서 그 기억만 휘발됐나.... 아니면 내가 집중을 안했나...
또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 넘버에서 로렐라이는 입을 닫고 있다. 여인이 아니니까.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쓸 동안 입을 열지 않는 연출도 처음 알게 됐는데 헉 소리나게 좋았다.
위로 아래로 위로~ 넘버 이름이 생각이 안나는데 아무튼 이 넘버 볼 때마다 프렌즈에서 모니카가 여성의 7가지 성감대 설명하면서 one one two~ 하던 장면 생각났다.
'우리는 로렐라이 언덕의 여인들' 넘버 다시 들으니까 너무 좋다. 하루종일 흥얼거리고 있고 '야한 여자'도 다시 들으니까 더 좋다. 솔직히 레드북 넘버 다 귀에 감기고 좋음.
그리고 넘버 끝날 때마다 박수 처야 하는데 못 해서 근질거렸다. 커튼콜 때가 제일 심각했는데, 열연한 배우들에게 기립박수 치고 싶었는데 영화관이라서 간신히 참았다. 하 삼연 가서 마음껏 박수 칠래
중간 중간에 관객석을 바라보는 연출이 있는데 이건 좀 부담스럽군요. 순식간에 몰입 깨졌다. 갑자기 관객에서 배우가 되어버린 기분이랄까... 그리고 앙상블 나올 때 사이드로 찍어서 역동적이긴 했는데 군무가 잘 안 보였다.
그리고 음향은 마이크에 바람 소리 다 들어가고 지지적 거려서 많이 아쉬웠다. 똑같은 중계 봤을 때는 못 느꼈는데 음향을 키워서 더 잘 들린 건지...
그리고 새삼스럽지만 영화관 단차랑 의자 미쳤다. 의자는 푹신하고 오래 앉아도 안아프고 심지어 리클라이너도 됨. 시야도 앞 사람이 무릎 꿇고 보지 않는 이상 시야 쾌적할 것 같은데. 이걸 두고 왜 나는 썩은 단차와 의자를 가진 공연을 좋아하는지...
결론은 레드북 너무 좋은 극이다... 일단 넘버가 귀에 꽂히고, 내용은 쉽지만 주제는 명확하고, 생각할 거리도 있고, 분위기도 밝고. 뮤지컬 처음 보는 사람도 재밌게 볼 극이다. 레드북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