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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실비아 살다 후기

moraeal 2023. 3. 15. 10:00

 

 

뮤지컬 실비아 살다 후기

 

 

주다온, 이지숙, 문지수, 전성혜, 이민규, 고유니

TOM 2관 실 2열

 

스포일러 주의

 

난 몰랐지 끝날 때 캐보가 다른 걸

 

벨 자의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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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자의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일대기. 어려서부터 시를 쓴 실비아. 캐임브릿지 인문학부에 입학하여 시인 남편을 만나 결혼. 시인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집안일에 시인 남편 뒷바라지에 자기 시를 쓸 시간이 없음. 쓴 시는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함. 실비아는 한 명의 시인이 아니라 시인의 아내로만 여겨짐. 여자는 어쩌고, 여자여서 어쩌고를 듣고 화나서 뒤집어 엎음. 남편은 실비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함. 훌륭한 딸도, 아내도, 여자도 아니라서 괴로움. 여자다워야 한다는 얘기를 한 엄마가 원망스러우면서 원망하니 죄책감이 들고, 아빠는 마음 속에서 죽여버리고, 바람난 남편이 없어서 자유롭다가도 돌아와줬으면 싶고.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전혀 없는 상황. 이런 환경에서 실비아는 만성적인 우울과 신경쇠약을 앓음. 실비아는 벨 자를 쓰다가 30살에 비상정차를 하고 다시는 깨어나지 못함.


뮤지컬 보면서 제일 많이 울었다. 불가항력이었다. 공연장이 아니라 바다다. 울음바다. 옆 사람도 울고 나도 울고 마지막 쯤엔 배우들도 운다. 

실비아가 나 같아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실비아의 모든 감정이, 행동이 공감되고 이해된다. 마치 빨간약 먹기 전의 나 같아서. 다 내가 한번은 해보고 느껴봤던 것들이라.

가부장 사회에 사는 여성이라 남성을 사랑하고 남성에게 사랑받고 싶어하고 여성의 삶을 강요받으면서도 성별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야하고 남성을 동경했다가도 이 혐오적인 사회에 분노하고 또 부당한 현실에 좌절한다. 여자여서 고통스럽고 분노하고 용서하고 증오하고 우울하다. 엄마도 아빠도 남편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서 혼자 남겨진 것 같고 외롭다.

그랬었다. 그래서 실비아의 만성적인 우울도 비상정차를 결심한 마음도 다 이해갔다. 그 거칠고 복잡한 마음이 나도 거쳐갔으니까.

그래서 실비아가 나같고 빅토리아가 실비아한테 하는 말이 빅토리아가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감정소모도 크지만 위로도 되고 용기도 얻었다. 여자들아 죽지말자. 살자. 같이 아홉번째 왕국으로 가자.

 

극 볼 때는 더 많은 생각을 했는데 감정 쏟아붙고 나니까 더이상 기억이 안 난다. 

 

이렇게 감정소비가 큰 극이다보니 트리거도 있다. 남자가 소리 지르는 장면과 자살 암시가 있기 때문에 조심할 사람 참고하길.

 

첫공이었는데 합이 안 맞는다거나 어색한 점 없었다. 무인할 때 맞다 첫공이었지 했을 정도로. 이전 시즌 했던 경력자 배우이라 그런지 첫공부터 연기가 성숙했고 합이 좋았다. 특히 실비아 역 맡은 주다온 배우가 너무 좋았다. 테드에게 화낼 때 실제로 싸우는 것처럼 악을 지른다. 그걸 몸이 못버텨서 휘청일정도로 몰입하던데... 목도 감정도 괜찮은지...

인터 없이 115분이라 지루하지 않을까? 인터에 길들여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싶었는데 연기에 내용에 홀려서 정신 놓고 봤다. 

기억나는 넘버는 술탄물. 실비아에서 제일 밝은 순간. 그리고 '아빠 이 개자식' 넘버 제목은 나중에 알았는데 마음에 들었다. 현장에선 연출이나 연기 때문에 압도돼서 제일 기억에 남는다. '아빠라고 말하며 내 피를 빨아마신 흡혈귀'라고 하는데 여성은 아빠, 남편 등 특별한 이름이 붙은 남성에게 착취 당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목도리와 책 비유도 좋았고.

 

몰랐는데 첫공날이 실비아 타계 60주년이었다. 그래서 무대 후에 정말 짧은 무대인사를 했다. 연출님이 나오셔서 따뜻한 말, 감동적인 말 했는데 그때도 줄줄 울어서 기억이 안난다. 겨울이 빨리 오면 그만큼 봄도 빨리 온다, 실비아를 생각한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촬영 가능이었으니까 찾아봐야겠다. 무대인사 후 배우가 빨간 손수건 나눠줬는데 빨간 목도리가 생각나서 또 왈칵했다. 

실 2열 앉았는데 무릎까지 잘렸다. 아컨 존은 아니었다. 찾아보니까 여기 역단차라는데 그래서 자리가 갑자기 나왔구나... 난 만족했다. 눕는 장면이 없어서 얼굴 표정은 다 잘 보였다.

나 아무래도 극만 볼 수 있으면 되는듯....

 

아무튼 최근 봤던 작 중에 제일 좋았다. 내가 서울 살았으면 지인들 다 데려갔을 듯. 다들 실비아 살다 봐주세요 꼭

 



끝까지 가니?
제 티켓에는 그렇게 적혀있는 걸요.
그래 나도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