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베이징과 톈진 여행
+톈진 편+
첫날
이 날은 역대급으로 더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더운 지역에 살아서 더위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첫 일정은 인민 광장(민원 광장)이었다. 숙소 코 앞에 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톈진의 하늘은 베이징과 다르게 맑은 여름 하늘이었다. 새로운 도시, 첫 일정,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날씨가 우리를 설레게 했다. 곧 기다리던 버스가 왔고 우리는 이카통(베이징 교통카드)을 꺼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카통이 인식이 안됐다. 몇 번을 기계에 가져다댔지만 인식될 때 나는 경쾌한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알고 보니 베이징과 톈진의 교통 시스템이 호환이 안 됐던 것이다. 당연히 우리나라처럼 버스 카드가 전국에서 호환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생각해보면 이 넓은 나라에서 호환이 되는 게 이상했지만) 이카통 환불도 안 받고 가져왔는데...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현금으로 요금을 지불했다.
한 여름에 땡볕이라 진짜 쪄 죽을 뻔했다. 간단하게 둘러보고 점심으로 훠거를 먹으러 갔다.
훠거로 유명한 체인점에 갔다. 이 때도 주문한다고 한바탕 진땀 흘려야 했다. 훠거가 원하는 재료를 선택해서 넣는 음식이다 보니, 메뉴판에도, 주문서에도 음식 재료만 잔뜩 써져 있고 사진이 없었다. (이 가게뿐만 아니라 보통 음식점이 그랬다.) 중국어 알 못 들은 도대체 어떤 재료인지 알 수가 없는 거다. 겨우겨우 파파고 이미지 스캔을 돌려서 재료를 유추해냈다. 어째 먹는 시간보다 주문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그래도 파파고 덕분에 밥 먹었다. 파파고 없었으면 이상한 재료 먹었을지도 몰라...여행 끝자락에 친절한 유학생 분들이 중국어로 된 재료 이름을 한국어로 번역한 자료를 발견했다. 이게 잇었다면 훨씬 수월하게 주문했을 텐데. 중국어 알못인데 중국 여행 가는 사람은 꼭 찾아서 저장하고 가길 바란다.
원체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거의 홍탕만 계속 먹다가, 마무리로 백탕에 칼국수 넣어 먹었는데, 세상에 그렇게 존맛일 수가 없었다.
후식으로 음료를 마셨다. 패션 후르츠를 좋아하는데 패션 후르츠 음료가 있어서 시켜봤다. 안에 코코넛 펄이 들어 있었다. 중국 음료 특징이 기본적으로도 양이 많은데 얼음까지 없어서 양이 진짜 많았다. 기본이 우리나라 벤티 사이즈인 거 같았다. 싼 가격에 양이 많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음료도 새콤한 게 맛있었다.
다음은 개산 성당에 갔다. 톈진 시가지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다. 성당 내부는 예배드리는 신자들과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성당 내부를 구경했다. 종교는 없지만 신자들과 성당 내부 장식,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니 왠지 신성한 기분이 들었다.
성당을 나와서 근처의 도자기 박물관에 들렀다. 완전 근처는 아니었고 조금 걸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렇게 벽면과 건물이 도자기로 뒤덮혀 있었다. 차이나답다.
다음 일정은 이탈리아 풍경구였다. 이탈리아 풍경구 가는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강에는 우리가 저녁에 탈 유람선이 보였다.
유람선 타는 곳은 이탈리아 풍경구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우리는 저녁에 유람선을 탈 계획이라, 먼저 유람선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탈리아 풍경구에 갔는데, 거의 반은 한국인이었다. 그전까지 한국인을 거의 못 보다가 한국어가 들리니까 반갑기도 했다. 찾아보니 톈진이 베이징 근교라 베이징 유학생들이 주말에 많이들 놀러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탈리아 풍경구에서 볼거리는 딱히 없었다. 간단하게 둘러보고 유람선 타기 전까지 땀 좀 식히자 싶어서 이탈리아 풍경구 안의 아무 음식점에 들어갔다. 맥주랑 오징어 튀김 시켰는데, 정말 내 인생에서 제일 맛있는 오징어 튀김을 여기서 먹었다.
사실 톈진 여행할 때쯤엔 베이징의 알찬 여행으로 체력이 거의 고갈되었던 터라 관광지를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마음이 컸다. 그래도 유람선은 반드시 타고 싶었다. 우리는 야경을 보고 싶어서 해가 완전히 진 후인 8시 30분 유람선을 타려고 했다. 표를 미리 끊어두고 맘 편하게 있으려고 안내원에게 표를 언제부터 구매할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해당 유람선 출발하기 30분 전부터 줄을 설 수 있다고 했다. 안에서 쉬는 것도 질려서 두 시간을 근처에서 사람 구경하거나 우리끼리 놀면서 기다리다가 표를 샀다. 원래 타려던 시간보다 일찍 탔으면 후회할 번 했다. 해 진 후 유람선으로 본 톈진 야경 정말 말도 안 되게 화려하고 예뻤기 때문이다. 톈진 가서 다른 건 안 해도 되니까 유람선 꼭 탔으면 좋겠다.
유람선에서 내려서 야식으로 양꼬치를 먹으러 갔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우리 보고 한국인이냐고 말을 붙였다. 그러면서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등 자신이 알고 있는 한국어를 말하기도 했다. 중국에서 이렇게 말 붙이는 사람이 처음이라서 재밌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대망의 양꼬치 가게. 여기도 현지 유학생 추천을 받아서 갔는데 정말 정말 정말 맛있었다. 직원 분도 엄청 친절해서 주문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여기서 양꼬치, 닭꼬치, 삼겹살 꼬치, 구운 양파, 구운 버섯, 구운 부추를 시켰다. 우리가 직접 구워 먹는 곳인 줄 알았는데 맛있게 구워져서 나왔다. 허기진 상태였기도 했지만 정말 맛있어서 추가 주문을 몇 번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정신없이 먹고 있었는데 뒷 테이블에 아저씨가 흰색 액체를 마시고 있었다. 신기해서 슬적슬적 봤는데 눈치를 채고는 우리에게 먹어보라고 조금 따라줬다. 당연히 술인 줄 알았는데 코코넛 우유였다. 아침이슬 같은 맛이 났다. 우리가 한 입씩 나눠 마시니까 아저씨가 아예 코코넛 주스와 오렌지 주스를 주문해주셨다. 고마운데 말은 안 통하고...겨우겨우 같이 사진 찍으면서 기념했다. 톈진의 관광지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런 인연이 너무 좋았다.
마지막 날
그 다음날 새벽 비행기라서 마지막날 저녁까지 시간이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이라 지치기도 하고 느긋하게 일정을 짰다. 고문화거리에 갔다가, 까르푸 가서 쇼핑하고, 청년식당에서 저녁 먹고, 톈진에서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서우두 공항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여행이었다.
고문화거리는 옛 풍경을 간직한 시장이었다. 시장답게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었다.
고문화거리 근처의 까르푸로 이동했다. 쇼핑하면서 남은 개인 돈을 거의 다 썼다. 나는 톈진 특산물인 꽈배기, 코코넛 젤리, 간편 훠궈, 라면 등을 샀다. 코코넛 젤리가 가장 내 취향이었다. 두리안은 호기심으로 사 봤는데 음...따뜻한 방귀맛이 났다.
중국에서 마지막 식사는 청년식당에서 했다. 식당 이름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다르게 식당 내부가 고급스러웠다. 우리는 닭 요리인 꿍바오지딩宫保鸡丁, 돼지고기배추 요리 干锅娃娃菜, 마파두부를 시켜서 먹었다. 나름 괜찮았다.
그리고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항으로 가는 데 정말 별 일이 다 있었다. 공항 리무진을 타려고 톈진 버스 터미널에 갔는데,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한다, 터미널 문이 잠겨 있었다. 분명 버스는 있었는데 표 사는 곳도, 입구도 다 잠겨 있었다. 왜 잠겼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가 너무 한국처럼 생각했나 보다. 당시에는 그걸 파악하기보다 공항으로 가는 방법을 찾는 게 더 중요했다. 그나마 우리가 새벽 비행기고 여유 있게 출발해서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갈 시간이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베이징으로 가서, 그곳에서 공항 철도를 타고 공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결정되자마자 바로 옆에 위치한 톈진서역으로 뛰어가서 베이징으로 가는 고속철도 표를 끊었다.
고속철도를 기다리면서 알아보니 공항 철도 막차도 간당간당했다. 우리는 마음이 한층 더 조급해졌다. 베이징에 도착해서 지하철을 타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카통을 환불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공항 철도 환승역에서 내렸는데 간발의 차로 막차를 놓쳤다. 막차를 놓쳤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디디를 불렀다. 멘탈이 나갔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뇌가 엄청 빨리 돌아갔다.
디디나 택시를 잡으려고 지하철 역 밖으로 나가니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안 잡혀서 결국 또다시 헤이쳐를 타게 되었다. (그 와중에 흥정했다...) 공항에 내리자 우리처럼 불법 택시를 타고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별문제 없이 체크인하고 출국 심사하고 짐을 검사하는데 일행 백팩에 있는 술이 걸려서 수하물을 다시 부치러 나갔다.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다. 수하물 부치고 다시 수속을 밟는데 이번에는 내가 짐 검사에 걸렸다. 다른 건 아니고 우산 때문이었다. 우산 빼고 다시 검사해서 통과되었다. 게이트로 이동했다.
다른 항공기는 비 때문에 지연되거나 취소되었는데 우리 비행기는 아직 지연이나 연착된다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비행기가 뜰 줄 알고 평화롭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게이트를 옮겼다. 옮긴 게이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출발 20분 전인데도 탑승을 안 했다.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눈치채고 게이트 근처의 편한 자리를 선점했다. 잠시 후 새벽 5시로 딜레이 되었다고 안내가 되었다. 그리고 5시까지 잠을 청했는데, 잠결에 7시로 딜레이 된다는 안내 방송을 들었다. 영어라서 잘못 들었겠거니 하고 다시 잤는데 일어나 보니 진짜로 7시로 딜레이 되었다. 그 후 한번 더 게이트를 옮기고 이번에는 기약도 없이 딜레이 됐다. 그 사이에 비는 그치고 해가 떴다. 한국 가는 다른 항공편은 이미 출발했다. 우리는 8시 30분이 되어서야 탑승을 했다. 같이 기다리던 한국인에게 듣기로는 대구에서 베이징으로 오던 비행기가 착륙을 못해서 인천공항으로 회항했다가 다시 들어온 것이었다. 지난번 제주에서도 그러더니, 정말 지연 없이 비행기 못 타는 운명인가 싶었다.
정말 마음 졸이고 신경 썼던 탓인지 비행기에서는 내내 잠만 잤다.
이 일이 어찌나 충격적이었던지, 여행 후반 부로 갈 수록 체력 고갈로 인해 사진이나 기록이 현저하게 줄었는데 이 일만 메모장에 구구절절 적혀 있었다. 그때는 엄청 급박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이것도 추억이다. 예전에는 '여행 때의 추억으로 산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그렇게 공감 가는 말도 없다. 어서 해외 여행 다시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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