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될
홀로 대만 여행기
타이페이 편
페퍼톤즈 긴 여행의 끝
짧은 여행을 시작하면서 들었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했던가. 시작과 굉장히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2019년의 가을이 유독 추웠던 나는, 새해가 밝자마자 따뜻한 대만으로 향했다. 누군가 그랬다. 겨울이 추워서 힘겹다면 따뜻한 나라에서 보내면 된다고.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이 말을 실행할 수 있는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를 가진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그저 겨울을 견디는 것이 답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저 말은 짧게나마 추위를 피해보자고 결심하는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 추위에서 잠시 벗어나고자, 그렇게 혼자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내가 모든 일의 결정권자이자 책임자이다. 주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롯이 내가 결정을 할 수 있지만 책임도 모두 내가 져야 했다.
그즈음 나는 모든 일이 귀찮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준비 없이 다니기로 했다. 왕복 비행기 표를 예매한 후부터 출발일까지 여행을 준비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출발 당일까지 정해진 사항이라고는 출입국 날짜와 숙소밖에 없었다. 숙소도 겨우 예약했다. 유심도 공항에 도착해서 구입하기로 했고, 환전도 하지 않고 타오위안 공항에 위치한 ATM기에서 체크카드로 대만화를 뽑기로 했다. 그게 내 선택이었다.
4박 6일 여행 경비로 8000 대만 달러를 뽑았다.
다음으로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으로 가는 국광버스 표를 샀다. 사실 표 사는 곳도 몰라서 눈치껏 한국 사람들 가는 길을 따라갔다. 무사히 표를 사고 버스에 탑승하러 갔다. 기사님이 수화물에 스티커를 붙여주고 짐을 실었다.
한 시간쯤 달려서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에 도착했다.
숙소 가는 길. 새벽에 도착했기 때문에 일부러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 10분 거리에 위치한 숙소를 예약했다.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 건물 바로 옆에는 자려는 노숙자들로 가득했다. 조금만 벗어나면 번화가지만 우리나라처럼 새벽까지 왁자지껄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둘째 날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 근처 번화가.
날씨가 엄청 좋았다.
분명 날씨를 확인하고 옷을 챙겼는데 생각보다 화창했다. 쌀쌀한 날씨를 예상해서 기모 후드를 입었는데 1월임에도 더워서 땀이 났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5월 중순 낮의 날씨였다. 현지인이 체감하는 온도는 또 다른 것 같았다. 그들은 경량 패딩을 입었다.
숙소가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 근처이기도 했지만 시먼딩이나 다른 관광지와도 가까웠다. 일정도 여유로워서 그냥 걸어 다녔다. 겨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따뜻한 햇살, 젊음으로 북적이는 거리, 이국적인 풍경,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 과거도, 미래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현재에만 집중하는 시간. 현실의 삶을 잠시 잊고 주변을 받아들였다.
누군가는 혼자 떠난 여행에서 생각을 많이 하고 왔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였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끌리는대로 행동했다. 그때의 나에게는 필요한 시간이었다. 현실에서 해방되어 내가 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시간이.
너무 더워서 시킨 음료. 중국도 그랬지만 대만도 일회용 음료 잔이 얄쌍하고 길었다. 가격도 저렴한데 양도 많아서 아끼지 않고 먹었다.
현지인들이 많은 식당에서 시킨 탕. 나도 모르게 이끌려서 들어갔다. 정확히 무슨 메뉴인지는 모르겠다. 그냥저냥 먹었는데 이때는 몰랐다. 이게 대만에서 제일 맛있는 식사가 될 거라고.
식사 후에는 도저히 돌아다닐 기분이 아니라서 숙소에서 쉬었다.
셋째 날
다음 날도 화사한 날씨가 이어졌다. 가지고 온 옷 중에서 가장 얇은 옷을 입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데 긴팔도 더웠다.
셋째 날의 점심은 덴쉐이러우에서 먹었다. 사실 덴쉐이러우에서 먹을 생각이 없었다. 정확히는 그 식당이 덴쉐이러우인지도 몰랐다. 그냥 사람들이 줄을 서길래, 대만에 왔으니까. 이런 이유로 딤섬을 먹기로 했다. 간단하게 샤오롱바오 1인분과 새우찐만두 1인분을 시켰다. 외국인 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메뉴가 한국어로도 설명이 되어 있었다. 직원 분들도 간단한 한국말도 할 줄 아셔서, 심지어 쓸 줄도 알아서 입조심했다. 한국인인 걸 알고 영수증에 안녕이라고 인사를 적어주셨다.
점심을 먹고 근처 국립대만박물관이 있길래 갔다. 원래는 일본 총독을 기념하기 위해 건설한 건물이라고 한다. 명칭과 용도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박물관 내부에 일본인 총독들의 동상을 전시해놨다.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였음에도 일본을 우호적으로 생각한다는 걸 들은 적 있는데 이 때 여실히 느껴졌다. 설명도 '일본인 누가 어떤 작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현재 대만이 그 분야의 학문을 확립할 수 있었다'는 식으로 식민지를 정당화하고 있었다. '한국과 대만이 일본 식민 지배 시기를 완전히 다르게 보는구나'를 직접적으로 깨달은 장소였다. 일본의 식민 지배 방식이 달랐다고는 하지만 한국인으로서는 일본을 우호적으로 얘기하는 게 이해하기 힘들었을뿐만 아니라 불쾌했다.
박물관 뒷편에는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택시를 타고 융캉제로 갔다. 저 멀리 타이페이101 타워가 보인다.
융캉제에서 실컷 구경을 하고 선물로 돌릴 망고 젤리, 펑리수, 누가 크래커 등을 바리바리 구매했다.
융캉제를 다녀온 후 숙소에서 짐을 찾았다. 타이난으로 이동하기 위해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타이베이에 이틀을 머물고 대만 중부에 있는 타이난으로 이동했다.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에서 타이난 행 티켓을 구매했다. 타이난에서 공항으로 바로 가기 위해 타이난-타오위안 행 티켓도 구매했다. 중국어를 하나도 못하니까 열차 종류, 목적지, 출발 시간, 탑승 인원 등의 정보를 미리 적은 메모장을 직원에게 보여줘서 티켓을 끊었다. 난 분명 THSR(고속철도, 우리나라의 KTX)를 끊어달라고 했는데 일반 열차(무궁화호)를 끊어줬다. 환불하고 다시 예매할 자신이 없어서 그냥 타기로 했다. 대만은 대합실이 따로 없는 것 같았다. 다들 땅바닥에 앉아있었다. 그래서 나도 바닥에 앉아서 기차를 기다렸다.
타이페이 메인 스테이션의 천장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햇빛이 유리를 통과해서 들어왔다.
기차를 기다리며 푸드 코드에서 식사를 했다. 볶음밥과 볶은 청경채가 나왔다. 청경채가 느끼했다.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몇 입 못 먹었다.
꼬박 4시간을 달려 도착한 타이난. 타는 내내 타오위안으로 가는 기차는 환불받고 THSR로 다시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번듯한 기차역을 예상했는데 타이난 기차역은 작고 허름했다.
타이난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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