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제주: 출발과 한라산
한라산 영실 코스, 제주 240번 버스 시간표, 한라산 첫눈
늘 그렇듯 어쩌다 보니 결정된 제주 여행. 처음부터 제주도를 생각한 여행은 아니었다. 후보지 중 하나였는데 비행기 왕복 티켓이 3만 원 대임을 확인하고 바로 여행지가 결정났다.
여행까지는 일주일이 남은 상황. 그동안 일정을 정리하고, 숙소도 결정하고, 맛집을 찾았다. 대만 여행 포스트를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여행 계획 짜기 정말 귀찮아하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결정된 내용을 깔끔하게 엑셀로 정리까지 할 정도로 의욕이 넘쳤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여서 그런가.
제주 지역 화폐인 '탐나는전'도 신청했다. 인센티브로 충전 금액의 10%를 줬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택시나 일부 가게 빼고는 사용 가능했다. 알차게 사용했다.
여행 테마는 내가 제일 소중해. 하고 싶은 걸 하되,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첫째 날: 출발
친구랑 다른 지역에 살아서 제주 공항에서 만나기로 했다. 도착 시간을 비슷하게 맞췄다. 출발 당일 오전, 오후에 비가 엄청 와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쳤다. 공항에 갈 때까지는 별 문제없었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연이 됐다. 아니 지연 없이는 비행기 못 타나 봐.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오쉐어로 발을 옮겼다. 미리 예약해둔 등산화, 등산 스틱, 등산 가방을 가지러 가기 위해서였다. 여러 업체가 있었는데 굳이 오쉐어를 선택한 이유는 일단 픽업하기가 쉬웠고, 우리가 예약한 당시 기준으로 가격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24시간 동안 등산화 2결레, 등산 스틱 2세트, 등산 가방 1개를 빌리는데 28,000원이었다. 공항 바로 앞에 위치해 있기는 한데 탑승동에서 걸어서 10분이 걸렸다. 영업시간은 9시까지였는데 우리는 비행기 지연 때문에 그 시간 안에 도착할 수가 없었다. 오쉐어 측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무인함으로 물품을 인수할 수 있도록 안내해줬다. 그래서 무인함에 갔는데 우리 물품은 없고 다른 사람 물품만 있었다. 오쉐어에 연락했더니 아직 준비가 안 돼서 없는 거라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라는 답을 받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등산화도 신어보고 등산 스틱 사용법도 배운 후 물품을 인수 받았다. 저녁 먹으러 가야하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서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오쉐어 앞에서 택시가 안 잡혀서 다시 공항으로 갔다.
숙소는 제주 팔레스 호텔. 군데군데에서 연식이 묻어나기는 했지만 침구나 화장실은 깨끗했다. 일단 위치가 좋았다. 바로 옆에 흑돼지 거리가 있고, 동문시장까지 걸어서 10분이었다. 이마트와 제주 창고형 마트인 마트로도 근처에 있었다. 프라이탁, BHC, 편의점, 아라리오 뮤지엄도 바로 옆에 있었다. 오션뷰 객실은 이미 예약이 완료되어서 우리는 시티뷰 객실로 체크인을 했다.
체크인 직후 근처 흑돼지 거리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원래 가려고 알아본 곳은 이미 마감을 했대서, 부랴부랴 다른 곳을 알아봤다. 대돈이 11시에 마감이라고 해서 그곳에 갔다. 마감 1시간 전에 가서 흑돼지 삼겹살 1인분, 흑돼지 목살 1인분, 볶음밥까지 후다닥 먹고 나왔다. 고기를 구워주셔서 편하게 먹었다.
숙소에 가는 길에 마트로에 들려서 한라산 준비물을 샀다. 삼다수 6병, 이온 음료 1병, 에너지바 4개, 한라봉/천혜향 주스, 우비를 구매했다. 제주라 그런지 삼다수가 엄청 저렴했다. 400원밖이라는 가격을 보니 구매욕이 자제가 안 됐다. 생수를 넉넉하게 담았다. 우비는 경험에서 나온 선택이었다. 제주는 우산이 필요 없다. 우산을 써도 젖는 건 매한가지였다. 바람에 우산이 안 부러지면 다행이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경험에 입각해 이번에는 처음부터 우비를 구매했다. 컵라면도 사려고 했는데 한라산 영실 코스 대피소에는 뜨거운 물이 없고, 따뜻한 물을 마시려면 따로 보온병에 담아 가야 된대서 포기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삼김이랑 샌드위치를 샀다. 내일 한라산에 가야 했기에 첫날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둘째 날: 한라산 등반
등반 당일 아침에 날씨를 확인하면서 한라산에 올해 첫눈이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라산 등반이 제일 기대한 일정이면서 핵심 일정이었기 때문에 날씨가 안 좋아서 중간에 내려오더라도 일단 가보기로 했다. 그래야 후회를 안 할 것 같았다. 물, 이온음료, 에너지바, 주전부리, 점심 등을 배낭에 챙겼다. 우리는 그나마 평탄한 영실 코스를 가기로 했다. 영실 매표소까지 가는 240번 버스를 타러 제주버스터미널로 향했다.
240번 버스는 버스터미널 안에서 타야 한다. 버스 시간표는 이렇다. 우리 계획은 8시 30분 차를 타는 것이었는데, 차를 놓쳐서 다음 차인 9시 30분 차를 타기로 했다. 보통 여행에서 여유로운 성격인데 이 때는 계획이 약간 어긋나자 조바심이 났다. 친구가 여유가 즐기자고 하자 비로소 마음이 풀렸다.
여유 시간에 뭘할까 찾아보다가 근처에 제주 김만복 김밥 본점이 있다길래 거기서 김밥을 사기로 했다. 15분 정도 걸어서 9시쯤에 도착했다. 손님이 없어서 기다림 없이 구매할 수 있었다.
영실코스 입구. 영실 매표소까지 240번 버스를 타고 1시간 5분이 걸렸다. 매표소에서 영실코스 입구까지는 택시를 탔다. 매표소에 도착했더니 택시는 1대가 있었고 입구까지 8000원을 불렀다. 다른 블로그에서 7000원, 요즘은 5000원까지 내렸다고 했는데 한 대밖에 없고 우리가 어려서 바가지 쓴 듯했다. 택시에 탄 후에 말해서 그냥 가기로 했다. 입구까지는 5분 정도가 걸렸다. 입구에 도착하니 한기가 돌았다. 입구가 해발 1280m임을 보고 나니 한기가 이해가 됐다. 덜덜 떨었는데 그래도 움직이니까 추위는 가셨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한라산에 가는 데 의의를 뒀다. 여행 테마에 맞게 조금만 힘들면 서로 얘기하고 지체 없이 내려오기로 했다. 그 힘듦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10분 올랐는데 벌써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다. 누가 7살도 무리 없이 올라갈 수 있는 코스라고 했어. 근데 다들 우리를 앞질러 가기는 했다. 내 체력이 문제였다. 정말 한 계단에 한 번 씩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오기로 올라갔다.
올라갈 때는 안개가 껴서 경치가 하나도 안 보였다. 그저 뿌얬다. 근데 우리가 영실기암에 가자마자 안개가 싸악 걷히고 구름 사이로 해가 떴다. 그러면서 제주도 풍경과 병풍바위가 보였다. 안개가 싹 걷히는 모습을 보는데 감탄만 나왔다. 풍경이 진짜 멋있었다. 경이로웠다. 조상님들이 무위자연, 안빈낙도를 주제로 고전시가를 쓴 이유를 알겠더라. 이게 신선놀음이지 다른 게 신선놀음인가. 풍경 하나만으로도 등산할 가치가 있었다. 딱 죽을 맛이었는데 풍경 보고 올라갈 힘을 얻었다.
그렇게 받은 기운도 잠깐이었다. 해발 1500m를 지나자 또 죽기 직전이 되었다. 저 깃발까지만 오르고 잠시 쉬자는 말을 반복했다. 숨이 차서 호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오르다보니 탐방로 난이도에 따라서 색을 다르게 칠해놓은 표시판을 발견했다. 천천히 어려워지면 적응이 되어서 나았을텐데 영실은 초입부터가 어려웠다.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우리의 목표는 윗세오름이었다. 윗세오름은 커녕 해발 1500m를 조금 지난 지점에서 내려왔다. 바닥난 내 쓰레기 체력에 거세지는 바람, 얼기 시작해서 미끄러운 바닥이 더해져서 우리는 하산을 결정했다. 저만큼이라도 갈 수 있었던 건 친구의 토닥임이 한 몫했다. 친구가 어르고 달래고 케어해준 덕분에 올라갈 수 있었다. 계속 물 마실래, 뭐 먹을래 물어봐줬다. 나 혼자 왔으면 진작에 내려갔다. 이 때 사진 보면 실시간으로 넋이 나간 내 모습을 볼 수 있다.
올해의 첫눈은 한라산에서 맞았다. 내려올 때 눈이 살살 날리기 시작했다. 비가 낮은 기온 때문에 얼어서 눈이 된 느낌이었다. 거의 다 내려왔을 때는 정말 폭설이 내렸다. 타이밍 잘 맞춰서 내려왔다 싶었다. 우리의 등산은 10시 40분에 시작해서 1시 10분에 끝이 났다. 다시 240번 버스 타러 영실 매표소까지 택시를 탔다. 내려가는 택시 비용은 5000원이었다.
겨울 산행은 처음이었는데 등산화, 장갑, 위아래 내의, 방한모자 필수임을 깨달았다. 나는 등산스틱도 챙겨 올 걸 싶었다. 물 3병, 이온음료, 에너지바, 김밥, 샌드위치, 삼김, 간식을 챙겨갔는데 정작 먹은 건 물 1병, 이온음료, 에너지바 1개, 김밥이 전부였다. 날이 춥고 물 마실 정신도 없을만큼 힘들어서 생각보다 적게 마셨다.
제주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까 3시쯤이었다. 숙소에 가서 좀 쉬고 옷을 갈아 입은 후 근처 카페에로 향했다. 방금 전 한라산에서는 눈을 맞았는데 여기는 캘리포니아가 따로 없었다. 날씨 바뀌는 게 예측불허였다. 어메이징 제주.
동문시장 안 카페 마음에온. 입구의 푸릇푸릇한 식물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우리는 시그니처 메뉴인 청보리라떼를 마셨다. 뻔한 메뉴가 아니라 여기서만 마실 수 있는 특색 있는 메뉴라서 선택했다. 외관과 맛은 녹차라떼와 비슷했다.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카페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한라산에 대설주의보가 내렸다는 안전안내문자가 왔다. 빨리 내려오길 잘 했다는 얘기를 다시 했다.
몸을 적당히 녹이고 등산 장비를 반납하러 공항으로 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비와 함께 돌풍이 불었다. 그래도 한번 겪어봤다고 침착하게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들어가서 우비를 입었다. 반납하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는데 그새 비가 그쳤다.
등산 장비 반납 후 저녁으로 삼대국수회관에서 고기국수와 돔베고기를 먹었다. 삼대국수회관은 예전에 왔을 때 택시 기사님이 추천해준 가게였다. 전에 먹었을 때는 고기국수가 별 맛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맛있어서 그릇을 싹 비웠다. 그렇다고 엄청 특별한 맛은 아니었고 돼지국밥에 밥 대신 면을 넣은 맛이었다. 맛있기는 맛있었다. 돔베고기는 돔베기 때문에 짜게 느껴졌는데 수육과 다를 게 없었다.
밥 먹고 동문시장도 가려고 했는데 너무 피곤해서 바로 숙소에 갔다. 오후 8시에 일정 종료. 동문시장은 내일 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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