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마와 루이스
긴 서론 짧은 감상
어느 순간부터 호흡이 긴 일을 잘 못하겠다. 한 때는 러닝타임이 3시간인 영화를 연달아 보기도 했는데, 요즘은 40분짜리 드라마도 보기 벅차다. 시작하면 끊지 못한다는 것이 부담감으로 찾아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상황에 과몰입하며 감정 소모를 심하게 해서 무의식이 영화를 거부하게 만드는 것일까. 뭐가 됐던간에 나는 꽤 오래 영화를 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왓챠에 델마와 루이스가 업데이트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델마와 루이스. 여성 로드 무비의 원조 격인 영화라는 이야기만 들어봤지, 볼 수 있는 곳이 없어서 보지 못하던 영화였다.
보고는 싶었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쉬는 날 마음을 먹고 델마와 루이스를 봤다.
나는 한 씬, 한 소품의 의미를 찾으면서 영화를 보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어 '음 사랑을 믿는 인물에게는 따뜻한 색감을 쓰고 사랑을 믿지 않는 인물에게는 차가운 색감을 써서 둘의 상반되는 모습을 보여줬군'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상하게도 델마와 루이스를 보면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두 명의 도주를 응원했다.
'델마와 루이스'는 전업 주부인 델마와 식당 서빙 일을 하는 루이스 두 여성이 여행 도중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하는 내용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하는 생활을 하면서 그들은 역설적으로 자유를 느낀다. 반복적이고 권위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생전 해보지 않던 일을 했기 때문일테다. 델마는 처음으로 자기 인생의 주체가 된 경험을 한다. 그런 델마의 '나는 뭔가를 이미 건너왔고 돌아갈 수도 없어. 난 그냥 살 수가 없어.'라는 대사는...정말 마음 속에 꽃힐 수 밖에 없었다. 주체로서의 삶을 알아버렸기에 그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데 어떻게 마음이 안 동요하겠나. 델마의 이 대사가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제목에 '델마'가 먼저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영화는 그들을 억압해온 것들에 순응하지 않고 그들만의 선택을 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자유를 억압당할 바에는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겠다는 둘의 모습이 참 여운이 남았다. 어떻게 잘 해서 멕시코에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영화 내에서 델마와 루이스는 성적인 대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델마와 제이디 사이 섹슈얼한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대상으로서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보기 참 편안했다.
주의해야할 점은 초반부에 폭력적인 장면이 있다. 굉장히 사실적으로 묘사되어서 충격적이긴하지만 그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안보기에는 아깝다.
나는 여성들이 모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범죄를 저지르라는 말이 아니라, 이런 우정을 쌓으면서, 사회적으로 여성에게만 부여된 억압은 벗어던지고, 삶의 주체로 살기를 바란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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